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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말하자니 비참해집니다..ㅠㅠ

 

(사)한국디지털사진가협회를 만들기전에 또 전국규모의 단체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한국사륜구동협회...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직 오래전에 만들었던 단체의 기록들이 일부가 있군요. ㅎ

그런데 지금은 단체가 없어졌습니다.

 

4년넘게 공들여 만들었던 단체인데... 홈페이지도 사람들도 다 없어졌네요.

그 단체가 살아있었다면 홈페이지의 기록에 설립자 김희동이라는 내역이 있었을 것인데..ㅠㅠ

닉네임이 주로 사용되었으니 에너지/김희동 이렇게 기록이 남아 있었겠지요.

 

전국의 산악용자동자를 타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상당부분의 시스템이 현재 협회와 비슷했었습니다.

협회는 D.I센터가 있는 것과 같이 그곳에서는 재난구조대가 있었지요.

그러니까 (사)한국디지털사진가협회에 대부분의 아이템을 가져왔으며 단체이름과 사람들 그리고 주활동목적등이 바뀌었군요.

 

현재 협회규모와 비슷할 정도의 규모였던 것 같군요.

대한민국에서 산악용자동차를 타는 사람들 반이상이 회원이었고 지금 어려운지부에 해당되는 제주지부의 소속에

차량이 약 40대정도가 활동했습니다.

요즘같이 차량들이 많은 시절이 아니었던것 같은데...전국모임에서 모이는 차량이 600대가 넘었던 시절이니

우리협회 회원들보다 그사람들의 집결력이 대단했었던 것 같습니다.

 

임도 다닐때 사진입니다. 보기에는 순정차인데...차값의 두배이상은..ㅠㅠ

 

2000년 1월 이군요. 양각산 재난구조대 발대식때의 사진이 있었네요.

 

그때의 직함이 단체의 설립자 부회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협회의 공모전을 하고 있는 모터사이클연맹과 그때도 교류가 있었더군요.

머리속에서 대부분 지웠기때문에 기억이 잘안나는군요.

 

 

 

예전사진들 찾아보고 생각해보니 지금보다 아마 더 활동력이 강했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시절 에너지라는 닉을 사용했습니다.

재벌급의 사람을 세워야 국내에 오프로드 파크 10개쯤을 만들수 있었기에 회장자리를 비워둔것 같습니다.

 

차량으로 산을 다닐려면 돈과의 싸움입니다.

어떤장치를 달았는가에 따라 험로를 가고 못가고 하니까... 카메라와는 비교가 안될정도의 소모가 많은 취미입니다.

한번만 실수하면 수리비 500은 그냥 들어갈수있는데...

왜? 이런 취미를 했고 단체를 만들었던가? 참 돌아보니 한심합니다.

그래도 단체가 살아있더라면 기분이나 좋겠지...죽어버렸으니 돌아보기 싫은 과거의 기록사 입니다.

 

튼튼한 차량을 만들기위해서 차축까지 만들었고....이니셜범버... 이니셜발판... 바디업키트까지 직접만들었던 시절이군요.

기본모양 말고는 대부분 직접설계하고 만들었으니 그때가 지금보다 몇배 대단했던 때 입니다.

키트를 설계는 직접했는데... 장사는 다른사람들이 했죠. 장사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에너지 검색하면

제일위쪽에 나왔습니다. 지금보다 더 유명세를 치뤘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지름신이 많았을까요? 요즘 생각해보면 미친짓 한것입니다.

 

아래사진의 구호를 보시면 지금 우리협회가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도 공모해서 만들었습니다.

 

나.너가 아닌 너와나 우리^.^

 

 이친구가 사무국장이었던가? 이름도 기억 안납니다.  제가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이 아주 부족합니다.

 

부산국제 모터쇼인가? 하여간 현재 벡스코에서 모텨쇼하는데 초기일 것 같네요. 초청받아서 간적도 있군요.

 44인치 타이어라는것 밖에 기억없습니다. 이런 차량들 때문에 벡스코 안쪽에서 부스 열었던 업자들은 거의 망했다는 후문...

아이들 데리고 오면 여기서 끝입니다.

 

오프로더는 정장이 안어울리는군요..ㅠㅠ 그래도 이사람들 산에 다닐때 차림은 아닙니다. 산에다닐때는 실미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일하게 양복입은 사람이 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장 싫어합니다.

 

 

4년여 모든 열정을 투자했던 단체를 왜? 포기하고 다시 돌아보지않았던가?

아무리 영광이라는 것이 눈앞에 있었어도 사람을 잃을수는 없는것이라 단체의 완성단계에서 모든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은 집에 어떤부부가 저녁에 찾아왔다... 다음날 새벽까지 살려달라고하던 기억은 납니다.

정리하는가? 포기하는가? 결정에 따라 그사람들 운명이 좌우되었던 거 같네요.

 

저는 포기했습니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는게 좋았는지? 지금 다시 해보라면 정리로 갔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게 쉬운게 아니죠.  그때만 해도 강한듯 했지만 어리석음도 있었죠.

 

젊고 혈기왕성할 시절 인생의 올인....꿈에 그려왔던 오프로드파크의 큰그림이 눈앞에 있었는데...

정리했다면 현재는 전국 각지에 파크가 만들어지는 꿈이 이루어졌을가능성은 상당했습니다.

제가 포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프로드는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사라졌는 것 같군요. 업을 하던 사람들은 전업을 했는 것 같고...

 

완성단계에서 포기할때의 아픔은 생각하기 싫으니까

그때사람들 이름이나 이런것 다 머리속에서 지웠습니다~~

 

그럼 이게 왜 지름신인가?
카메라보다 몇배 지름신이 왔을때니까...

돌아보면 정말 미친짓입니다. 인생의 많은 순간도 허비했고....

산에가서 핸들링 한번 잘못하면 몇백... 젊을때였으니 협회에 그때 사람들중 두명이 사진을 해보겠다고 해서 와 있군요.

닉네임 설중매 오삼공 다른사람들은 제 주변에 그림자도 못보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사진은 직업이 아니라 취미에 가깝습니다. 취미에 올인하면 안됩니다.

취미는 즐기면서 재미있게 해야되고 또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소한 다른의견들과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일들 남의말을 쉽게하는 것들 모든게 과거와 지금단체가 비슷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항상 말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말조심이라는 글을 자주올립니다. 한 다리만 건너가면 살이 뭐 같이 붙습니다. 왜들 그렇게사는지?  

 

얼마지나지 않아 속았다고 사정을 하는데...모든 것 잊어버리고 사진을 시작했을때이니 다시 돌아가지는 않지요.

집안에서는 잘됬다고 합나다~~젊음과 함께 수억 날렸으니 기분 잡치는데...ㅠㅠ

 

여러분들 제가 경험하기는 사진은 안식입니다.

모든게 조급하면 사진이 안됩니다. 그냥 즐기면서 웃으면서 하십시오.

 

제가 그 단체를 버리지 않았다면 현재의 협회도 없겠지요. 지나고 보니 기초의 기반까지를 만드는 역활을 할수있었던 것은 

과거의 경험들이 두번의 실패를 만들지 않았는 것 같습니다.

 

지름신으로 망할만큼 망해봤지만 돈이 죽지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것...즐길수 있을 만큼 즐기면 인생은 즐겁습니다~~

 

생각해보니까 또 다른 분야의 지름신이 있었네요..ㅠㅠ 그것도 생각해보니까 파란만장 하네요.

제 인생에 지름신은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마눌신보다 몇배가 더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마눌신을 무서워 지겠지만...

 

재미있게 사진생활 합시다..^^

 

 

오프로더 에너지 / 포토그래퍼 김희동

 

 

PS: 추가사진 올립니다. 지금 이취미하는 것 사진으로 촬영하면 작품 나오는데... 하는사람이 없네요.

 

가로세로 설중매/백승철

 

 오삼공 / 오세영

 

협회 표어와 같은글을 이시절의 행사에서도 항상 붙어있었다는...

 제주도 이름을 모르는 오름....

 

 이런게 오프로드 입니다. 바위타는 것부터 모든 것  다카르렐리보다 짜릿합니다.

 

화절령 1m눈밭 언덕도 그냥 치고 나갑니다. 화절령 종주-  사진가들이 즐겨찾는 함백산 바로옆입니다.

겨울 작품사진은 이곳이 더 많이 나올수 있는 곳입니다. 겨울에 이젠 갈수있는 차량이 없어서 못갑니다.

걸어서는 못가는 오지입니다.

 언양 백운산-

 

 어딘지 모름~~ 바퀴가 로드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꾸어 다닙니다. 

 

바위타고 계곡을 넘나들어야 됩니다. 요즘 같으면 난리납니다. 환경보호 단체에서...

 

 넘어질것 같지만 잘 안넘어집니다.

 

고속도로주변의 임도드라이빙 타이어도 임도용이 승차감이 좋습니다. 둘째아들넘인데... 이제는 20대후반이네요.

 

초급정도의 로드에서는 중분히 다닙니다.

이차량으로는 초급 중급로드만 다닐수 있습니다. 더 험로는 못다닙니다.

 물속으로도 다닙니다. 더 깊으면 드라이빙이 안됩니다. 안동땜이네요~~요즘 같으면 날리나죠.

 

제주도 로드 탐사 어느계곡인지는 모릅니다. 오래되어서~~

오프로드파크를 할 장소라고 소개받았는데...어디로 갔는지도 기억없습니다. 별로 안하고 싶네요.

그때 만들었다면 지금은 제벌급이 되었겠지요. 그 당시 제주도 땅값이 이런장소는 현재와 비교하면 1/20도 안되었을 거 같군요.

오프로드코소로서는 제주도가 세계 제일의 코스가 나오는 곳입니다.

 

유리창 이마에는 한국사륜구동협회 재난구조대를 붙여야  오프로더라고 할수있었습니다.

이마에 저 스티커가 없으면 불법튜닝단속에 잘 걸립니다.

짝퉁 스티커가 정품 스티커보다 몇배더 돌아다녔다는 에피소드~~ 서울시내 다니는 흙뭍지않는 바퀴 큰차는 대부분 짝퉁으로  

야타가 유행할 시절 인기 최고였습니다.

포르쉐 페라리보다 더 인기차종은 발통큰차~~

 

 

 

더길면 지루하겠지요. 이때 사진 했더라면 정말 작품 많이 남았을 것 같은데...왕피천 종주등 절경들이 허다했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