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해가 어릴 적 뒷산에서 할부지와함께
나의 조부모님께서는 숙부님의 지병치유를 위하여 깊은 산 속에서 오래 사셨습니다.
맑은 공기와 좋은 먹거리가 숙부님께 좋다는 말씀에
농사와 친지를 뒤로하셨습니다.
6.25사변시에는 인민군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오지였습니다.
오죽하면 그 곳 마을 이름이 “웃다락골” 이라고 했겠습니까.
“아랫다락골”에서 약 한 시간 남짓 등산을 하고나서야 도착 된다고 생각 하면 됩니다.
나는 방학이되면 소등에 올라타고 늘 함창에서 농암 웃다락골로 갔습니다.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나절에서야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같은 냇물을 예닐곱 번 건너서 도착할 즈음에는 어떻게 아셨는지 할머니께서는
싸리문 앞에서 웃고 계셨던 기억에 행복합니다.
그 기억은 오십이 넘은 지금도 내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두 분께서는 한 달에 한번쯤 농암 장으로 나들이을 하셨습니다.
가시기 전 날에는 어린애 소풍가듯이 준비가 부산 하셨습니다.
거의 대부분 할아버지께서 다녀오시고 할머니는 못 가실때가 많았지요.
너무 멀고 험해서 다녀오시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캄캄한 새벽에 출발 하여서 산 속을 다 지나갈 무렵이면 작은 냇물이 나타납니다.
그 곳에서 새벽이슬에 젖은 옷을 벗어두고 새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입고 온 헌옷은 냇물에 빨아서 버드나무에 걸어 놓습니다.
장을 다보고 그 곳에 도착하면 어느새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지요.
귀가할 때에는 그 반대의 절차가 필요 했습니다.
어두워서 귀가하는 날에는 할머니께서 십년감수 하시는 날입니다.
산 속에서 헤매거나 산짐승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요.
저녁상을 물린 후 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시지요.
시장에서 사온 물건을 조목조목 꺼내놓고 두 분의 행복이 시작 됩니다.
어떤 물건은 너무 비싸게 사셨다는 둥 싸게 사셨다는 둥 하시면서
밤늦도록 웃으시다가 싸우시다가
그렇게 행복을 나누시더군요.
만약에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와 같이 시장을 다녀오신 날에는,
그 날은 돈 버신 날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어찌나 기억을 잘 하시는지 기가 막힙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번번히 할머니를 못당하십니다.
“요 양말은요~ 200원이라고 하는데요 50원 깍았고요”
“홍식이 작기장은요~ 100원인데요 3권에 200원 줬고요”
“꼬딩어는요 장에서 젤로 좋은 놈으로요 다섯 마리에 100원 깍았고요”
“300원이나 깍았고요”
“150원 깍았고요”
“000 깍았고요”
“100원 짜린데 우수리로 한 마리 더 얻었고요”
“요고 꽁짜로 얻어오니라고 후불이 엄마가 장터국시 사준다는 것도 못먹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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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께서는 밤늦도록 깍은돈으로 얼마를 버셨는지 셈 하시느라
웃으시다가
셈이 틀렸다고 싸우시다가
다시 셈을 하시다가..........
나는 지쳐서 결론은 못보고 잠이 들고는 했습니다.
물론 엄청 많이 벌어 오신 것으로 결론이 났을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분께서는
그렇게 행복을 나누고 사셨던 거지요.
할부지와 할매가 하늘소풍을 가신지 오래 되셨지만 그곳에서도
얼마를 버셨는지 셈하시느라 잠이나 잘 주무시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웃으시다가
셈이 틀렸다고 티격태격 하시다가
또 웃으시면서
그렇게 사시는지 궁금 합니다.
할매하고 할부지가 보고픈 보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