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8월 전남 광양 이경모
8월 17일 전남 광양의 해방
지방에서의 해방 기념행사를 촬영한 사진 중에 촬영자와 촬영 장소, 촬영내용 등이 밝혀진 것은 이경모의 사진이 유일한 것이었다.
특히 지방에서 해방을 맞았던 역사적인 장면을 불 수 있는 유일한 증언이기도 했다. 이경모는 1945년 8월 17일 전남 광양에서 맞은 해방의 모습을 생전에 그의 책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16일은 아침부터 무척 바쁜 날이었다. 15일 석양 무덕전 회의에서 결의된 17일의 ‘해방 경축 군민대회’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대부분 소비했다. 모든 생활필수품을 일본군이 수탈해 가서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6일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연습하였다. 이날 무엇보다도 감격스러웠던 것은 오전 11시쯤 일본 천황 사진과 교육칙어(일본식 교육헌장)을 봉안하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정중히 머리를 숙여 절을 하였던 봉안전 옆 국기 게양대에 일장기에 먹물로 덧칠한 청색이 아닌 검정색과 적색 태극기를 달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17일 아침부터 전남 광양서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들기 시작한 군민들은 10시30분쯤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운동장을 꽉 메우고 있었다. 식 순대로 해방 경축 군민대회를 진행하고 여기서 광양지치위 원회가 구성되었으며 부위원장에 선출된 정진무씨의 만세삼창으로 이날의 대회를 마쳤다. 곧이어 시가행진으로 들어갔는데 축하행렬이 경찰서 앞에 다다랐을 때 일부 젊은이들이 경찰서로 밀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유지들이 가까스로 말렸다. 다행스럽게 큰 유혈극없이 군청과 금융조합 • 우체국 앞을 지나 목성리 향교 입구까지 무사고로 시가행진을 마쳤다. 필자는 이날 행사를 아침부터 끝날 때까지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하였다.(14)
이경모의 사진에는 시가행진에 참가한 사람 중에 군모를 그대 쓰고 나온 사람도 찍혀있으며 일제 36년 동안 잊어버렸던 태극기의 모습을 기억하고 기억해, 새로 제작할 수도 없었던지 사용하던 일장기에 먹으로 태극기처럼 그려 들고 나왔다. 대한독립만세라든가 해방 만세 대신에“고려독립축하”라고 쓴 플래카드도 사진에 찍혀있다. 36년 동안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어느 것은 잊어버리고 어느 것은 기억해낼 수조차 없던 우리의 것을 어렵게 기억해내 준비한,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지방 소도시의 해방을 맞는 실 풍경을 실감 할 수 있다.
8월 17일, 전남 광양은 대단히 무더운 날씨였든 듯 하얀 여름옷이 땀으로 등에 착 달라붙어 있고 하얀 옷 탓인지 만세 시위자들의 얼굴 표정은 어두운 색 속에 묻혀버렸다. 간박감이 없는 이 사진들에는 해방의 격정적인 감격은 없지만 시골의 정취가 스며있는 또 다른 해방의 기쁨을 보는 듯한 사진임에 틀림없다. 해방이 된지 불과 2일정도밖에 되지 안 했는데도 태극기와 플래카드를 여유 있게 만들어 동네 어느 집의 대밭에서 긴 대만을 골라 깃대로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사진 2007.4월호, -최인진(사진역사박물관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