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의 모진 풍파는 우리 할마이(할망구) 얼굴에 작게 또 깊게 골을 파고 머리엔 하얗게 서리를 내리셨구나. 다 닳아버린 틀니로 잘 드시지 못하지만 언제나 우리 앞에서 실컷 먹었다고 손사레를 치시는 당신은 처음부터 내게 장모의 모습이 아닌 어릴적 외할머니의 모습과 내리사랑만 주시던 할머니로 다가 오셨습니다. 난 언제나 당신의 사위가 아니라 어린아이인 것으로 착각하고 투정을 부리곤하지요. 당신은 나의 장모님이 맞나요?
당신은 나에게 장모님이 아니라 할머니요 엄마입니다. 내 손의 숟가락이 오르락 내리락 할때면 당신의 턱도 같이 따라 움직이고 내가 누우면 머리가 방바닥에 닿기전에 당신은 배게를 받치지요. 세상은 21세기로 바뀌어 정보화시대니 디지털이니 하고 떠들고 있지만 이런 시간들도 당신 앞에서는 70년대 아날로그의 부드러움과 포근함으로 변화되어 버리는 위대한 마술사 당신!
난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당신앞에서 예의바르고 착한 사위가 될 수 없으며 공경할 줄 모릅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 들지 않습니다. 당신의 딸이자 나의 아내가 설령 섭섭해하더라도 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앞에서의 난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되어버리는 걸 어떡합니까.. 당신은 모르실겁니다. 아주 아주 가끔씩 당신이 삐칠때면 제가 안절부절 못하는것을.. 몇년전이지요. 잘난 아들땜에 당신이 말 없이 집을 나가 이웃 동네에서 일을 할때 얼마나 울면서 찾았는지 모른답니다. 그때 생각이 잠깐나니 벌써 눈물이 핑 돕니다.
"장모님.. 들릴께요.."라고 말하고 차를 출발시키면 5분도 채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당신은 도로에 나와서 기다리시지요. 저희들이 보고 싶어 매일매일 찾아오고 싶어 외손주, 쌀, 고추, 양파, 참기름등 갖은 핑계로 찾아 오시는거 잘 알고 있습니다. 자주 찾아오면 폐를 끼칠까 사위 눈치를 보는 당신.. 당신의 체구보다 10배는 큰 냉장고를 순식간에 채워버리는 당신. 그런 당신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의 할매이고 우리의 할매인 당신..
할매! 왜 그렇게 나이를 빨리 잡숴? 다른건 안 잡수시면서 나이는 왜 그리 빨리 잡숴... 벌써 여든을 훌쩍 넘기고 있잖아... 내 새끼들이 외할머니의 "내리사랑 "을 알까? 나중에 나중에 우리할매 사랑 알아주까? 할매 내일 시간내서 들리도록 해보께요... 옥수수 많이 삶아줘..
p.s 영희(은채)작가님의 사진을 보고 지난날 긁적였던 장모님 글을 올려봅니다. 오늘따라 무척 보고싶어지네요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