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불가원 불가근이란 글귀를 떠올리며---)
行己在淸濁之間, 理家在貧富之間,
仕宦在進退之間, 交際在淺深之間.
-「質言」
몸가짐은 청탁(淸濁)의 사이에 있고,
집안을 다스림은 빈부(貧富)의 중간에 있다.
벼슬살이는 진퇴(進退)의 어름에 있고,
교제는 깊고 얕음의 가운데 있다.
몸가짐이 너무 맑으면 곁에 사람이 없다.
너무 탁하면 사람들이 천하게 본다.
너무 맑지도 않고
그렇다고 흐리지도 않게 처신하는 것이 옳다.
집안의 살림은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조금 부족한 듯한 것이 낫다.
너무 가난하면 삶이 누추해지고,
너무 풍족하면 세상에 대해 교만을 떨게 된다.
벼슬길에 몸을 둔 사람은
언제라도 물러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설령 세상과 만나지 못해 재야에 있더라도
내일이라도 부르면 나아갈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이 옳다.
벼슬에 있으면서 자리에 집착하니 못하는 짓이 없다.
재야에서 실력은 갖추지 않고 원망만 쌓고 있으면,
문득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오히려 그로 인해 패가망신하게 된다.
사귐의 이치도 다를 것이 없다.
너무 깊지도 않고, 너무 얄팍하지도 않은 거리가 필요하다.
속없이 다 내준다고 우정이 깊어지지 않는다.
이리저리 재고만 있으면 상대도 곁을 주지 않는다.
마음을 건네더라도 나의 주체를 세울 수 있는 지점까지만 허락하라.
하지만 이 ‘사이[間]’의 정확한 지점을 알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공부가 필요하다.
허물없는 사이
참 좋은 사이입니다만
우리는 허물없는 사이를 많이 오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예의가 빠지면 절대 허물없는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여도 늘 곁에 있는 사이
하며, 기쁜 일, 힘든 일 생기면 알려 주고픈 사이
이러한 사이를 희망하기에
나이가 들수록 연인사이보다 친구를 더 갈망하나 봅니다.
공부란 것이 별다르게 있겠습니까?
연륜과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 아닐까 생각듭니다.
사귐의 단어에 적당치는 않지만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허물없는 사이라 하여 함부로 대하는 일 없다면
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사이[間]의 지점에 서지 않겠는지요.
촌장이 살아온 주위를 둘러 보니 사람은 많으나 진정한 친구는 없더군요.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