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제조원:카메라모델:플래시:초점거리:조리개변경:노출방식:노출모드:노출시간:노출보정:W/B:ISO:촬영일자:
수원화성 성벽문양
너무 이쁘다
이돌이 네모 반듯한 돌로 죽이어졌다면
이렇게 이쁠 수 있을까?
이렇게 단단하게 보여질까?
수원화성 성벽을 천천히 돌아 본다.
그 옛날 지혜로 어떻게 성벽을 쌓았을까?
정약용 할아버지께서 과학기술 거중기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생각해보고
정조 대왕의 효심도 여기에 동원된 수많은 민초들도 생각하게 하며 성벽을 돌아 본다.
수원화성이 많은 부분이 파손되고 다시 복원되고도
유네스코에 지정된 이유는 기록문화 이다.
몇개의돌을 어떤 장비로 어떤규격으로 어떤 형태로 만들었는지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
상세히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 기록이 있었기에 원래상태로 복원하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것이다.
사진을 찍으며 습관처럼 멀리보고 가까이 보고 성벽을 바라보는데
똑같은 돌하나 없고 저 성벽 돌문양이 모았을때 얼마나 운치있고 이쁜지 한참을 바라고
가까이 다가가 가니 큰돌사이 작은돌이 박혀 있는 모습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돌을 쇄기돌도 있지만 틈새돌 틈박이 돌이라 이름을 지어본다.
저돌이 있기에 세월이 지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오랜 세월을 이겨 냈으리라
[틈박이 돌]
네 이미 작은 돌이라 버려지고 발길에 차이고 쓸모없는 돌이었거늘
큰돌 사이사이 네가 같이 함으로 이토록 큰 성벽이 기나긴 지탱할 수 있음이고
네 틈박이 돌도 큰 돌과 같이 함으로 이제 귀하고 소중한 돌이니라.
사람의 이빨이 틈이 벌어져 있음 복이 센다 하지않나
네 틈박이 돌로 인해 이 큰 성벽이 기운이 빠지지 않고 견딜 수 있음이고
더욱더 단단하게 오랜세월을 지탱할 수 있음은 네공이 아니라 누구도 부정 못하리라.
틈박이돌~ 너는 이제 소중하고 고귀한 돌이고 내 너를 귀히 어어뼈 하노라
[문화재청 홈페이지 참조]
수원 화성은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이다.
정조는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화성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정조 18년(1794)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성곽의 둘레가 약5.7㎞, 성벽의 높이가 4~6m 정도이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쌓았다.
성벽은 서쪽의 팔달산 정상에서 길게 이어져 내려와 산세를 살려가며 쌓았는데 크게 타원을 그리면서 도시 중심부를 감싸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성안의 부속시설물로는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특히 다른 성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창룡문·장안문·화서문·팔달문의 4대문을 비롯한 각종 방어시설들과 돌과 벽돌을 섞어서 쌓은 점이 화성의 특징이라 하겠다.
화성은 쌓은 후 약 200여년이 흐르는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되었는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심에서 근본이 되어 당파정치 근절과 왕도정치의 실현 그리고 국방의 요새로 활용하기 위해 쌓은 화성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