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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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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 태생 1864-1946
회화주의 사진에 반대하여 사진은 리얼리즘에
철저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근대사진의 선구자이며
스냅 샷의 창시자이다. 스티글리츠가 스트레이트
포토를 제창함으로 사진은 새로운 탈바꿈을 시작하여
근대사진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의 배려로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전기기계공학을 전공하다 사진화학자인
H.W Vogel교수의 사진실험실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2년후 사진화학을 전공했다.
1890년 독일유학 9년만에 미국에 돌아온 그는
무질서한 당시의 미 사진계에서 아마츄어협회에
가입하여 아마츄어 포토그라퍼편집자가 되어 작품,
문필, 강연, 강습등으로 미국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사진의 예술성과 가능성을 강력하게
불어 넣어 주었다. 이런 결과로 그를 중심으로모인
사람들과 사진클럽을 만들고 기관지로 카메라노트를
창간하고 1902년에는 사진분리파운동을 시작하였다.
사진분리파는 그가 새로 조직한 클럽이면서 사진의
새로운 가치를 표명한 선언으로 20C의 분수령을 넘는
역사적 자각운동이다.
당시 미국의 작화 경향도 영국의 회화적사진을
모방하여 연초점 묘사와 인화 수정을 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도 예외가 될수는 없었으나 여기서
탈피 하려고 항상 생각하고노력했으며 사진기와
렌즈의 감광유제의 기본적 성질도 엄격히 살리려고
노력했다. (공과대학출신 사진화학공부)
사진분리파운동을 하기 위해 1903년 카메라워크란
기관지를 창간하고 1905년에 포토291이라는 화랑을
열었다.
화랑291은 현대사진의 산실일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의 현대미술의 모태가 되었다. 이 화랑이 당시
미국의 전위적인 예술혁명의 중심이되자 1917년을
고비로 사진분리파운동은 일단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 까닭은 1차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계
이민인인 그에게 모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
때문이다.
사진 분리파운동이 내건 순수사진이란 다게르가
사진을 발명한 당시에 신봉한 순수한 기계적 기록성을
되 찾자는 것 이었다. 즉 렌즈가 본래 갖고있는
정확하고 정밀한 그리고 광학적인 기능을 사진의
기본으로 다시금 다짐하자는 것이었다. 스티글리츠의
사진미학은 사실주의에 역점을 두고있다. 사실주의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재현하는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는 주의이다.
사진 분리파운동으로 스티글리츠는 새로운 사진적
Reality를 기초로 한 Straight 사진의 올바른 자각을
유도했고 사진의 기록성에 관한 의미를 인식시켜
기록에 있어서의 예술성이란 문제를제기하고 그의
개성있는 시각은 많은 사진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사진의 눈을 현실 한 복판으로 돌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동시에 보는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끌어내는 사진의 은유적인 상징성 즉
Equivalent를 통한 자각은 Paul Strand와
F64Group으로 이어지는 오늘날 젊은 사진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뚜렷한 맥을 이루었다.
Equivalent: 1920년대 부터 작업한 구름 사진들의
제목 동등한것 대응하는 것이란 뜻으로 이것은 구름이
자신의마음속에서 느끼는 그 무엇과 동등하거나
대응되는 것으로 나타내려 한 것으로 그의 사진적
태도가 자기 세계속으로 내면화 되었음을 알수있다.
대상의 객관적인 진실의파악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객관적인 현실을 은유적인 상징성을 띠게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이입했다.
만년에`디 인터미트 갤러리,'어메리컨
프레이드,라는화랑을 차렸다. 1903년에 창간된
카메라워크는 초기에는 사진 위주의 편집을 했으나
점차 모던 아트을 확산시켜 로댕,마티스,호트렉
고갱등의 작품을 소개하며 1917년 50권을 발간할
때까지 최고의 인쇄술로 Quality Magazine의 권위를
지켜 나갔다. 종착역.3등객실.겨울의5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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