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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제조원: Canon카메라모델: Canon EOS R6m2플래시: Flash did not fire초점거리: 105.0 mm조리개변경: 8/1노출방식: Manual control노출모드: Manual exposure노출시간: 1/13 sec노출보정: 0W/B: Manual white balanceISO: 1600촬영일자: 2024:09:21 17:03:16

식구 동양란은 잎이 그려내는 곡선미와 그것이 자아내는 운치가 있다. 잡초 속에 묻혀 있어도 그 자태가 의연한데다 수수한 꽃이 풍겨내는 향기가 좋아 나는 이들을 좋아한다. 고고한 생김새와 그윽한 향기는 유럽의 어느 향수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녹색을 유독 좋아해 사철 푸른 난을 오래전부터 가까이 해온 것은 어쩌면 연분인지도 모르겠다. 전시회 축하로, 아이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어느 땐 생일선물로… 갖가지 사연이 담긴 난이어서 어느 것 하나도 소중히 다루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난에 대한 강좌에 귀를 기울이고 책을 훑어보며 나름대로 쌓은 지식을 적용해가는 시간들이 신선했다. 스무 분가량의 난을 중심으로 주변에 키 큰 관엽식물들을 조화롭게 배치할 때마다 마음이 벅찼다. 잦은 손길에 난은 나날이 푸르러 갔다. 발코니의 여백이 아담하게 채워져 집 안이 언제나 청초함으로 그득했다. 분주한 아침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서면 버티칼부터 거둔다. 난은 약한 오전 햇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가지는 혼자만의 이 시간을 사랑한다. 산뜻한 햇살을 받은 난이 생기가 넘쳐 바라보는 나도 절로 싱그러워진다. 어떤 잎은 유려한 곡선미의 우아함이 학의 날갯짓으로 보이고, 어떤 녀석은 정갈한 승무가 연상되며, 거침없이 사선으로 뻗은 잎에서는 기상이 충천한 일출이 느껴지기도 한다. 잎이 섬세하고 선이 고울수록 여성미가, 두껍고 힘차게 뻗을수록 남성의 기백이 느껴져 소우주를 발코니에서 보는 것 같다. 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허욕과 집착, 근심과 불안으로부터 평화로워짐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풀이었을까. 녀석들과 함께하면 마음이 차분하고 잔잔해진다. 제각각의 곡선미를 지닌 진초록 난과 대화를 하며 헝클어진 마음을 빗질한다. 쓰라린 패배 이후 재도전한 수능생 큰아이의 고단함을 바라보며 온 마음으로 빌기도 했었다. 제 오 계절을 거듭 겪어낸 뒤 긴장된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를 앞두기까지, 남편과 냉전 중일 때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의 이 친구들 앞에 와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갑자기 열 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익산(예전부터 사는 곳은 익산이나 지부는 광주로 소속되어 있슴)을 떠나 대전의 큰 병원에서 한 계절 가까이 머무는 동안 난도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아이가 회복되어 병원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니 난들이 병상에 누웠던 아이 모습이 되어 있었다. 수분을 잃어 잎이 비틀어지고,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어 푸름이 가신 채 아사 직전이었다. 주부가 부재중인 집에 아침 길을 나서기도 바빴을 식구들이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사람도 사랑이 부족하면 거칠고 생기가 없어지듯 이들도 사랑을 먹고 자라는 식물이었다. 건강한 몸으로 거듭나도록 딸에게 세심한 신경을 쓰듯 난에도 발길이 떠나지 않았다. 정해진 날에 꼬박꼬박 물을 주고 채광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철이 바뀌면서 간신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아 갔다. 어느덧 난도 한가족이 되어 우리 집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고 있었다. 내 생활의 질서가 일시적으로 일그러지는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약속한 듯이 봉긋한 꽃망울을 밀어 올리는 놈이 있다. 오동통한 꽃대는 나날이 조금씩, 조금씩 자란다. 세상에 어떤 꽃도 하루아침에 피지 않는다는 듯 느리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속도로 하늘을 향해 키를 키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그 꽃 대궁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긴 겨울 방학을 건너 다시 봄 방학에 다다르도록 아이들과 씨름하는 사이 꽃봉오리도 나날이 부풀어 간다. 어느 날 침상에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코끝으로 스며오는 향이 있다. 산천보세(山川報歲)가 밤사이 개화하여 창틈으로 스며온 것임을 나는 직감적으로 안다. 이럴 때면 가진 것이 없어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우리 집의 봄을 알리는 자줏빛 전령사다. 그 고유의 맑고 높은 향기를 집 안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방학도 드디어 끝이 난다. 팔월 염천을 견뎌내며 세상의 잡다한 소용돌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엄동설한에도 때가 되면 참으로 정직하게 피어 나를 못 견디게 한다. 하루하루 살피며 기다린 시간들이 청량한 향기로 돌아오기에 이토록 황홀경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난향이 퍼질 때면 지나가는 바람도 잠시 머물고 밤이면 달도 쉬었다 가는 듯 했다. 무언의 친구들은 희생과 봉사로 일궈진 가정이란 울타리 속의 또 다른 식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때로 삶이 버거워 시름에 젖고, 토하지 못하는 말들을 조용히 들어주는 진솔한 벗들이다. 기울인 정성만큼 말없이 보답하는 정직함에서 나는 모름지기 삶의 자세를 배운다. 15년 전에 썼던 수필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입맛도 변하듯 사람의 취향도 변하는가 봅니다. 그렇게 애착을 느끼며 가꾸었던 난에서 5년전 부터 관심이 사진으로 옮겨가면서 점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지요. 요는 일까지 하게 되면서 주말마다 출사를 하게 되니 자연 두 가지 일을 다 잘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가 한 가지 일에 매료되면 몰입하는 경향이 짙다 보니 난을 소홀히 할 수 밖에요. 난을 바라볼 때마다 항상 미안함이 앞섰습니다. 물을 줘야 하는 때를 놓치기 일쑤여서 난은 근근이 생명력을 유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나무가 죽게 생겼으면 갑자기 솔방울을 많이 단다던가요. 나무도 그렇듯 식물도 그런가 봅니다. 생명력에 위태로움을 느꼈는지 예년에는 어쩌다 피던 난들이 저마다 꽃을 피우더군요. 종족번식의 일환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사계란이 꽃을 한창 피웠는데 그 옆엔 또 하나의 꽃대가 올라와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아한 향을 느끼며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저와 삶의 굴곡을 함께해 왔던 여정에 보답하듯 앞으로는 관심을 더 쓰리라 약속합니다. 사계란의 곡선미를 느낄 수 있도록 난 다이에서 들어내 따로 사진을 담아 봤습니다